내생각하는지

호국보훈의달 6월, 6.25전쟁(한국전쟁) 원인과 피해규모 사망자수


올해도 어느덧 전반기의 마지막달을 맞이하였네요.


곧있으면 장마도 시작되겠고.. 본격적인 찜통더위도 찾아오겠지요.




그리고 6월의 첫날에..


한국전쟁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참전용사들의 넋을 기리는의미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포스팅을 써내려가 볼까합니다.


초등학교때 이후로 6.25에대한 글을 써보는게 처음이라


마치 밀린숙제를 하는 기분도 들고..


묘한느낌이네요.


우선 6.25가 발생한 원인부터 알아볼게요.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배한후 우리나라는 1945년 8월15일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죠.


하지만 우리나라에 잔존해있는 일본군을 섬멸한다는 명분으로


소련군이 진군해 내려오게되고, 미국또한 이후 인천을통해 서울로


들어오게 됩니다.


긴 일제강점기 탓에 힘이 부족했던 우리나라는 미국 영국 소련 등의


강대국에게 잘 차려진 먹잇감이었을겁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뉘게되고 (모스크바3상회의)


결국 38선을 기준으로 둘로 나뉘게 됩니다.


북한과 남한으로 분단된이후 미군이 철수한 틈을타고


북한이 선전포고도 없이 1950년 6월25일 남침을 해옵니다.


원인은 결국 남한의 민주주의 이념과 북한의 공산주의 이념의 대립이었죠.




6.25 전쟁 관련 영상다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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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작된 전쟁은 1953년7월27일 휴전협정을 맺기까지 무려 3년이넘게


지속되었으며 피해규모만 전체 사망자수가 300만명이 넘고



경제적인 피해금액도 우리나라만 30억달러에 가까웠습니다 (당시피해금액)


공업시설,발전시설,탄광시설,주택등 거의 50%에 가깝게 파괴되었구요.



6.25전쟁 시기별 기록들.


남북한 모두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6.25전쟁은


전쟁의 폐해를 뚜렷하게 보여주고있습니다..


전쟁이후에도 전쟁당시 심어놓은 지뢰로인해 (홍수가 날때마다 떠내려온다)


많은 피해사례가 있구요.


백범김구선생님은 처음부터 한반도의 분단을 강력히 거부하는 세력이었으나


안두희씨에 의해 살해당하였죠..


그런그도 결국 1996년 10월23일 인천에있는 그의 집에서 한 버스기사가


휘두른 정의봉에 의해 피살당했습니다.


만약 김구선생님이 살아계셨더라면.. 남북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를일이구요..


만약이라는 말로라도 씻어내고 싶은 우리의 아픈 역사..


세월이 흐른다고해서 결코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다시한번 참전용사들과 또 당시 총칼에 쓰러져간 우리 국민들을위해


명복을 빌어봅니다..